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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나의 바람 홍만희(시인, 수필가)

기사입력 2018-07-02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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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의 바람홍만희(시인, 수필가)

오늘 북서울농협을 방문했다. 조합원 가입이 최종 승인되어 출자금을 납부하기 위해서다. 조합원 승낙서 날인과 담당직원으로부터 신규 조합원 교육일정 등 이런저런 안내를 받았다. 신입인사 차 조합장을 찾아뵙고 덕담을 나누었다. 조합장은 자신이 처음 농협에 입사할 때부터 지금까지 30년 이상 지켜본 우리 아버지의 근면하고 부지런한 성품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아버지는 창동초등학교를 졸업한 해인 1945년부터 오늘까지 어림잡아 70년 이상 농사를 지었었다. 197311일 북서울농협이 설립될 때는 창립 조합원으로 기여하셨으니 농협의 산증인이다. 노원구에서 8대째 농사를 짓다가 80년대 택지개발로 논밭이 모두 아스팔트로 덮이고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자 외가인 연천군 청산면에 장만해둔 밭에서 농사를 계속 지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노원의 마지막 농사꾼이라는 조합장의 말씀이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북서울농협은 농업인만이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오늘 내가 조합원이 된 것은 농민의 자격이 부여된 날이기도 하다. 나의 가입과 함께 아버지의 조합원 탈퇴도 함께 이루어졌다. 평생 농사를 지으신 아버지로서는 든든한 힘이 되었던 조합을 탈퇴하는 상실감이 크셨을 테지만 그래도 자식이 이어서 조합원이 되었으니 나름대로 위안을 삼는 듯하다. 아버지를 이어 농사를 짓게 된 나에게도 무엇인가 느끼게 해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축하식과 탈퇴식 등 절차는 없지만 뜻 깊은 자리임에 틀림이 없다. 한평생을 농부로 살아오신 아버지의 모습은 자식 입장에서 안쓰러운 마음과 함께 존경과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평생이라는 명예가 아버지 자신에게 훈장처럼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못지않게 도 잘 마무리하셨다고 아버지, 당신에게 위로 말씀을 드리고 싶다.대를 이어 살아가는 삶은 여건이 허락지 않는 한 가능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내가 농사꾼이 된다는 것은 나의 개별적인 삶도 있지만 아버지의 삶도 담겨 있다. 집안의 가업을 이어간다는 것은 환영받을 만하지만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몇 해 전부터 아버지가 경작한 밭에 매실나무를 심었다. 올봄에는 파, 참외, 고추 등 작물을 심었다. 처음 하는 일이라 서투르지만 그나마 아버지가 곁에 있어 조언을 받으니 할 만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떤 작물을 어떻게 심을 것인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구순이 되는 아버지에게 더 이상 건강이 허락지 않는다. 작년에 정년퇴임한 나로서는 농사에 대하여 문외한이지만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었던 농부의 길을 차근차근 걸어갈 것이다.그것은 한평생 농사밖에 모르시던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고 발견하는 일이다. 더 나아가 아버지의 삶에 나의 삶을 보태는 일이고 보면 우리 집안의 정체성과 직결되지 않을까. 그 삶이 먼 훗날 내 자식이 아버지인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 집안의 정체성을 담아 새롭게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너무 먼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내비치지 않은 나의 작은 소망이다.

 

(하계1동 해바라기 공원은 9대째 살아 온 홍만희 선생의 집 앞 논이었다. 사진에 보이는 느티나무는 홍만희 선생의 탄생을 축하하며 부친이 직접 심은 나무로, 토지가 수용되어 공원으로 개발되는 과정에서도 절대 베어내지 못하도록 민원도 넣고, 데모도 해서 살려냈다.)

 

노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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