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종편집일 2026-06-24 12:36

  • 오피니언 > 동행구민

최병규씨 ‘할머니의 갈증’ 독도문예대전 대상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글쓰기

기사입력 2015-09-01 20:48

페이스북으로 공유 트위터로 공유 카카오톡으로 공유 문자로 공유 밴드로 공유
0

최병규씨 할머니의 갈증

독도문예대전 대상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글쓰기

글을 쓰는 일은 자기를 덜어내는 일로 시작한다. 자기 이야기를 다 한 다음에야 비로소 세상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올여름 제5회 대한민국 독도문예대전에서 시할머니의 갈증으로 대상을 수상한 최병규(59, 상계주공 2단지)씨도어머니로부터 글의 탯줄이 출발한다.

“10년간 치매를 앓던 어머니가 20132월에 돌아가시자 마음이 허전해졌다. 3월부터 1년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어머니에 대한 시만 썼다. 이 간절함을 어디 표현할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백일장과 공모전에 출전하게 됐다.”

최병규씨는 글을 쓰기 시작하자마자 2014년 직지사랑 백일장 우수상, 2015년 제5회 마포백일장 장원, 11회 전국 자연사랑 생명사랑 시공모전 은상 수상 등 연달아 상을 받은 실력자다.

시인도전의 이력은 중학교 2학년부터 시작된다. “2때부터 7년간 신춘문예에 도전했다. 신문사에 매해 시 5편씩을 써서 보냈다. 될 때까지 해본다고 하다가 제대 후 먹고 사느라 꿈이 묻혀버렸다. 이후 원단디자인을 했다. 화양리와 성수동에 사무실을 차려 돈도 많이 벌고 아파트도 샀다. IMF 때 휘청했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하지만 중국으로 생산업체들이 이전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샘플만 만들거나 소규모생산만 해서 점점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흘러흘러 간 게 명함디자인인데 요즘 컴퓨터 못하는 사람이 없고 감각 있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일을 접었다.” 그후 그는라는 친구와 재회했다. 45년 만이다.

시를 하루에 한편씩 쓰자고 마음먹었다는 최병규씨가 올해 쓴 시만도 어림잡아 250, 이미 쓴 어머니에 관한 시만도 100여 편이다. 그러나 그는쓸 만한 시는 한편도 없다.”고 말한다. “시인은 60살부터 진짜 시인이다. 탄탄한 내 시가 100편 이상 넘어갈 때 등단해야 어딜 가도 자신 있게 시를 내놓을 수 있다.”

홀로 지내는 최병규씨는 공황장애를 앓았다.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는 그 병이 그에게는 온몸이 하얘져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고 심장이 급히 뛰고 호흡이 가빠 내가 지금 죽어간다.’고 느끼는 극도의 긴장상태로 나타났다. 응급실에 가면 깨어나는 신경정신과적 질환이었다. 그는 병의 원인을 심인(心因)성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세 살짜리 막내 여동생을 찾는다. 심인(尋人)이다. 그가 보는 앞에서 트럭에 치여 하늘로 간 여동생을 예나 지금이나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의 충격이 트라우마가 되지 않았나 싶다. 약 안 먹고 병을 극복하려니 먼저 내가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스스로 정신을 정리해주고 수습해줘야 했다. 자기성찰도 하고 명상도 했다. 글 쓰는 일이 자기 정리에 많은 도움이 됐다.”

그의 시심은 순박한 외모 속에 뚝심으로 들어있다.“나는 남의 시를 베껴 쓴 적이 없다. 시를 베끼는 건 도둑질이다. 이중투고도 안 된다. 양심 없는 짓이다.”라고 말한다.

시에 대해서는 젊은 사람들의 시는 장래성을 보고 잘 쓴다고 평한다. 여성들의 시는 기교가 아주 넘친다. 잘 쓴 건 맞는데 인생이 녹아 있지 않다. 철학이 없다. 글 쓰는 기술만 배운 것이다. 체험에서 나와야 농익은 시가 된다. 괴롭고 환경이 열악해야 시가 나온다. 뇌에 기름이 끼면 시가 나올 수 없다. 바람 불고 살얼음 끼고 버석버석 소리가 나야 시가 나온다. 그래서 길을 떠난다, 방랑시인 김삿갓처럼. 그도 한 자리 크게 했으면 시인이 못됐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외로운 삶이 시의 원천이라 여기는 그는 93일 독도문예대전 시상식을 앞두고 있다. 부상으로 외로운 섬, 독도도 가볼 수 있게 되었다.

 

▲ 제목을 넣으세요

 

할머니의 갈증

최병규

 

할머니의 방은 천장만 덩그런 창문 없는 방

천장에 별이 뜨면 안개이불을 끌어다 덮어요

안개이불에는 고향 냄새가 스며있어

밭갈이 암소의 이랴 소리가 안개 속에 꾸역꾸역 피어나요

저녁연기 구수한 된장내가 동해 끝에 걸리면

바깥마당, 병아리를 몰고나온 암탉이 봄볕을 쪼아대죠

 

저 해류에 밀려오는 하얀 포말 끝에 나부끼는 어군들

날카로운 괭이갈매기의 부리에서 한 끼의 끼니가 부서져요

배운 적 없어도 생존법칙의 양태가 파도 타듯 익숙하죠

백두가 뿌리 찾아 족보 따라 가 보면 동해의 외로움이 만져 져요

동해의 끝자락에 우뚝 솟은 쇠뿔처럼 외롭지만 당당한

저 민족의 혼불 같은 굳건한 묏부리가 저력으로 박혀있죠

매운 해풍에도 양대의 기상이 눈부시도록 빛나요

 

바다의 푸른 혈류가 태양 속으로 외로움을 태울 때

푸석푸석한 할머니의 독백 같은 갈증이 샘솟 듯하죠

해저 수만리로 걸어들어 간 해류의 발자국에 지문이 자라요

지문은 두 발에 백두가 낙인한 듯 신발이 끼워져 있어요

물속으로 은밀히 내민 난류가 한라의 손을 부여잡고 있죠

 

해풍이 기침을 뱉을 때면 외로움은 갈증이 심해져요

방에 이는 비늘이 천정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물 같아요

밤새 머물다간 별들의 샘물을 퍼서 건네주시며

물도 체한다고 천천히 마시라시던 해무 속의 할머니

갈증이 날 때마다 할머니를 불러보면 안개이불 슬며시

걷어낸 손에 어느새 한 바가지의 샘물이 들려있죠

 

할머니의 손길은 천장에서 쏟아지는 한 줄기 감로수예요

 

 

노원신문 김명화 기자 fornowon@hanmail.net

 

노원신문697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