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신문의 현재 - 이강한 교열단장
봉사활동에서 시작해 지역언론의 사명감
언론은 공정한 취재와 함께 정확한 보도가 생명이다.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신문의 기사가 친절하고, 바르도록 해야 한다. 노원신문은 기사가 마감되는 토요일 교정을 거쳐, 편집되는 일요일 오후에도 2차 교열이 진행된다.
노원신문의 기사를 제일 먼저 읽는 이강한 교열단장은 2012년 1월 15일부터 노원신문의 기사를 꼼꼼히 검토해왔다. 어느덧 11년의 시간을 함께 해왔다.
“방통대에서 법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교육학과에 편입하던 해였다. 57살에 어디 가서 취업하는 것도 아닌데, 피나게 공부한 것을 써먹어 보자는 생각이었다. 법학은 논리가 정연해야 하는 학문이라 특히 국어를 잘해야 한다. 지금도 연중 100여권의 책을 읽는 다독가이며, 학창시절 글짓기 대회도 나가는 등 나름 문장력을 갖추고 있어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해보자고 시작했다.”
이강한 단장은 상계동이 개발되기 전, 20세 후반 노원에 왔다. 노원역 개발 초창기 처음 부동산중개업을 시작하면서 미분양된 대림아파트를 처분하기도 했다. 최초로 286 컴퓨터를 이용해 부동산 매물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하는 혁신적(?) 첨단영업이 서울신문에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분당, 일산 신도시 생긴다고 다른 중개업자들 떠나갈 때 노원에 남았다.
97년 IMF를 겪었고, 재기해 전농동 재개발 현장에서 중개업을 하다가 2008년 미국발 글로벌금융위기로 또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오는 손님도 없는 참에 공부나 하자며 방통대에 입학했고, 노원신문 교열봉사를 시작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점점 부담이 생기면서 사명감이 들었다. 신문기사가 잘못 나가면 망신이니까 공부 많이 했다. 일반독자들이 읽는 글이니까 어렵지는 않지만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고, 기사로서의 객관성을 가져야 하니까 교정이 적잖게 까다로운 일이다. 인터넷도 찾아보고, 국어연구원에 직접 질문을 올려 답도 구했다.”
처음에는 오탈자 색출위주로 글자 잘못 쓴 것만 봤는데 10년을 넘게 기사교열을 보면서 이제 지면 전체를 보는 눈이 생겼다. 기사를 보면 ‘취재에 신경을 썼구나, 지면 채우는구나.’가 보인다.
이제까지 고생해서 1000호 나왔지만 이강한 교열단장은 “이제부터 하루하루가 칼날이다.”라고 말한다. “한두 사람만으로 운영되는 것이 노원신문의 치명적인 문제이다. 신문 외연을 넓히기 위한 최소한의 인원이 필요하다. 그 문제를 풀어야 2천호도 가능하다.”
메이저 신문인 중앙일간지도 이미 오래전부터 만년적자인 종이신문의 다음을 위한 필사의 탈출구를 찾기 위해 시민주 공모도 제안한다. 젊은 인재들과 함께할 수 있는 자본기반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70세를 목전에 두고 있는 나이로, 병치레도 한두 번 하면서 기운이 예전 같진 않다. 더구나 쉬는 주말, 일요일마다 교정을 보느라 개인 일정을 할 수 없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내가 교정을 보는 한 노원신문이 최대한 깔끔하게 나오도록 한다. 교정볼 때는 긴장해야 하니까 내 자신이 정신 바짝 차리고 각성하는 계기가 된다. 두뇌운동을 하니까 치매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교정을 보는 시간만큼은 나이는 아직 숫자에 불과하다고 자부한다.”그의 목소리처럼 노원신문의 현재도 아직은 청춘이다.
노원신문 백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