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규 노원구의회 사무국장 35년 공직 마무리
노원구 개청해서 지금까지 노원주민 지켜
‘상계동이 내 고향, 더 변화 발전하길’
1980년대 상계택지개발이 이뤄지면서 1988년 마침내 노원구가 탄생했다. 이듬해 89년 노원신문이 창간되어 1000호를 맞고 있다. 노원구의 변화를 지켜보며 35년간 공직자로 노원을 지킨 송창규 노원구의회 사무국장이 정년을 앞두고 오는 6월 30일 현직에서 물러난다.
“87년에 제대하고 돌아오니 노원이 완전 변해 있었다. 88년 5월 13일자로 서울시에 입사해 첫 발령지도 내가 살던 상계3동이다. 거기서 5년 3개월을 일했다.”
송창규 국장은 중랑천을 건너가려면 줄배를 당겨 창동으로 가야 했던 1967년부터 지금의 동일로 주변의 논이 겨울이 되면 스케이트장으로 변하는 상계동에서 자라 신상계초, 재현중학교를 다녔다. 누구보다 노원을 잘 알기에 편한 아파트동에는 못 가고 구청에 근무하면서도 주로 참모부서에서 일했다.
“90년대 초에 부천 세무비리가 터져 전국적으로 세무감사가 실시되었다. 당시 인원 4명인 감사실 민원관리팀에 근무했는데, 선배들이 모두 감사파견을 나갔다. 아무한테도 물어보지 못하고 혼자 고생한 경험이 업무를 빨리 익히게 했다.”
참모역할만 하던 송창규 국장은 치수관리팀장을 맡아 당시 김성환 구청장의 관심사항인 기후변화 관련 사업으로 중랑천환경센터를 만든 것이 마음 뿌듯한 성과물이다. 젊어서부터 국토청결운동, 자연보호운동, 장화 신고 중랑천 청소, 동별 청소구역 지정 등 업무를 담당한 경험으로 자원순환과장이 되어 2021년 ‘도시청결도 1등’으로 노원의 품격을 높인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꼽는다.
송창규 국장은 중2때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상계동에서 무척 어려운 생활을 이어갔다. 성격적으로 남 앞에 나서지 못해 늘 손해 보는 삶이었다. “숨은 쉬는지 소리라도 들어보자.”며 동료들이 일부러 건들기도 할 정도로 소리 없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35년 동안 9명의 구청장을 모시면서 구청, 보건소, 동, 의회까지 무리 없이 다 근무했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동네 유지들이 박카스도 사오고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민원인이 방문하면 직원이 차를 대접하는 행정으로 변화했다. 민선 지방자치가 되니까 구청장도 뭔가 사업을 벌이면서 지역이 갈수록 변화한다. 구청은 갈수록 일이 더 많아지는데, 공무원은 안 해본 일을 해야 하니까 고충이 크다. 청렴, 부패청산을 강조하면서 투명해지니까 정도 없어졌다. 젊은 직원을 들어오면서 조직관리도 쉽지 않다. 그래도 직장은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해야 한다.”
구청장은 오로지 구민만 보고 가는 자리라는 송창규 국장은 “직원들도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오승록 구청장은 일을 시키면 필요한 예산과 인력을 배정해 일할 수 있게 한다. 그것이 주민에게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7월 발령 나서 올해 국장으로 승진한 의회사무국에 대한 애정도 깊다. “김준성 의장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혁신적인 변화에 맞춰 직원들도 부지런히 배우며 적응하고 있다. 정책지원관들도 의욕적으로 일해 의회가 활발해졌다. 구청에 비해 작은 조직이라 한 가족처럼 매일 보는 사람들이니까 서로 건강하게 챙겨주며 성장하면 좋겠다.”
송창규 국장이 어릴 적부터 살았던 동네는 지금 상계뉴타운 개발 중이다. 어려운 사람들이 살던 상계동이 이제는 집값이 올라 살고 싶어도 못사는 동네가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관심이다.
“서울 끝자락 베드타운이라 일자리가 없다. 창동차량기지가 마지막 희망이다. 노원의 제일 큰 개발지니까 잘 되기를 바란다.”
“능력 없지만 성실하게 일했다.”며 35년을 마무리하는 송창규 국장은 “도시에 살면 그냥 쉴 수 없으니까 남쪽 지방으로 가고 싶다. 한달살이를 하다가 기회가 되면 눌러앉아도 된다. 그동안 못한 책도 읽으면서 편안히 살아보고 싶다. 이젠 쉬고 싶다.”고 말했다.
노원신문 백광현